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시앵 레짐 (문단 편집) === 제1신분(기도하는 자) === [[성직자]]/[[수도자]] 계층으로 약 13만 명이었다. 프랑스 왕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만 [[가톨릭]]이라서 [[교황]]의 신하라는 이중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. 하지만 교황은 멀리 있고 힘이 없던 탓에 실질적으론 프랑스 왕의 신하나 다름없었다. 1신분의 숫자는 0.8%~1% 미만에 불과했지만 경작 가능 토지의 10%를 차지하고 있었고, 교회의 [[십일조]][* 오늘날 [[가톨릭]]에서는 '교무금'이라고 한다. 액수 또한 반드시 10분의 1을 낼 필요는 없고, 자율적으로 형편에 맞게 낸다.]와 [[수도원]]의 토지 등등 까지 합쳐서 여러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다. 거기다 당시 프랑스의 교회는 기본적으로 '''[[면세]]'''라서 대단한 부를 축적했다. 하지만 1신분 모두가 기득권층은 아니었고 일선 성직자들과 고위 성직자, 그리고 고위 성직자 중에서도 상황 돌아가는 걸 파악할 머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랐다. 고위 성직자/수도자와 하위 성직자/수도자들끼리도 계층이 갈려서 [[대주교]], [[주교]], [[아빠스|수도원장이나 수녀원장]] 같은 고위급 성직자 및 수도자들은 귀족 가문에서 충당되었고, 주요 [[직위]]들도 귀족 출신이 독점하였기에 이들도 알고보면 귀족이었다. 이런 큰 [[성당]]과 [[수도원]]이 귀족 출신에게 있었고 혜택도 많기 때문에 이런 고위 성직자들은 귀족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하였다. 반면에 [[지방]]의 작은 본당이나 시골의 성직자/수도자들은 당시에 [[농민]] 및 [[시민]]들과 직접 만나면서 [[현실]]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고, 신분도 귀족과 먼 이들이었다. 교회의 자금도 일괄적으로 거두어가서 재분배하는 형태였는데, 최소 단위 [[교구]]나 본당에는 자금이 내려오지 않은 데다 내려오더라도 얼마 안 됐고, 일반 백성들과 접촉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하위 성직자/수도자들은 고위 성직자/수도자들과 이해관계가 달랐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